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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가장 따뜻한 색, 블루'의 연출력과 메세지, 그리고 현실

by dailybigblog 2025. 4.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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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가장 따뜻한 색, 블루' 속 한 장면

영화 '가장 따뜻한 색, 블루'는 한국에서는 흔히 레즈비언 영화라고 회자된다. 필자도 처음에는 단순한 호기심으로 보기 시작했는데, 이제와서 이야기할 수 있지만 이 영화는 단순한 사랑 이야기가 아니다. 이 영화는 뭔가 명명하기 힘든 감정을 이끌어내며, 끝없이 생각하게 만든다. 보는 내내 그리고 보고 난 후에도 마음속 어딘가를 파고드는 그 여운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감독의 연출력에 대한 찬사

그동안 수많은 영화를 보며 감동을 받았고, 생각에 잠긴 적도 있었지만, '가장 따뜻한 색, 블루'는 그와는 다른 방식으로 가슴을 파고들었다. '비포 선라이즈' 시리즈처럼 편안하면서도 담담한 여운을 주는 영화들이 있다면, 이 영화는 한참이 지난 후에도 말없이 생각을 머물게 한다. 감독 압델라티프 케시시의 연출력 덕분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주제 자체는 다소 대중적이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관객들의 영화평을 살펴보면, 지극히 '보편하지 않은' 내용들 속에서 '보편함'만을 읽어낸 것 같다. 관객들을 몰입하게 만드는 것은 감독의 섬세하고 치밀한 연출 덕분이다. 사랑이라는 감정을 그려내는 방식이 관습적인 경계를 뛰어넘는다. 누구에게는 불편하거나 낯설 수 있는 장면들을 통해 오히려 더 보편적인 감정을 끌어내는 것이다. 당사자가 아니라면 느낄 수 없을 감정이라 생각했지만, 보는 내내 그다지 큰 이질감 없이 영화 속 인물들의 마음에 몰입하게 되었다. 장면 하나하나가 강렬하지만 과하지 않다. 복선들이 탄탄하게 깔려 있고, 배우들의 감정선은 너무나도 자연스럽다. 감독은 소수의 이야기를 보편적인 언어로 번역해냈고, 그렇게 우리는 ‘그들’의 이야기를 ‘우리’의 이야기로 받아들이게 된다. 영화를 보고 난 후에도 오랫동안 여운이 지속되는 이유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영화 속 메세지 : 비보편 속에서 피어난 보편성

처음엔 이 영화를 단지 ‘동성 간의 사랑’이라는 소재로만 받아들였다. 하지만 보는 내내, 그리고 보고 난 지금도 느끼는 건 그것이 아니었다. 이야기의 중심은 분명 특정한 정체성과 삶을 가진 인물들임에도, 우리는 그들의 사랑, 갈등, 성장, 그리고 상처가 나의 과거 어느 장면과 다르지 않음을 깨닫게 되었다. 누군가를 우연히 만나서 좋아하게 되고, 한동안 행복감을 느끼다가, 어느 순간 어떤 사건으로 서로 상처입히고 떠나게 되는 과정. 성소수자나 성소수자가 아닌 사람들이나 매한가지 아닐까. 주인공들이 경험하는 감정들은 그 누구의 것과도 다르지 않다. 감정이 폭발하는 순간에도, 차가운 이별의 순간에도, 우리는 우리 자신의 연애를, 혹은 잊고 지냈던 감정들을 떠올리게 된다. 영화는 '다름'으로부터 출발하지만, 결국은 '같음'에 도달한다. 무엇보다 인상 깊었던 건 마지막 장면이다. 한쪽은 떠나고, 한쪽은 멈춰선다. 우리는 누구를 더 옹호할 수도, 누구를 더 비난할 수도 없다. 하지만 어쩔 수 없이 덜 행복해진 쪽에 마음이 가는건 어쩔 수 없다. 그게 인간이다. 그리고 그 마음이 이 영화를 더욱 깊게 만든다고 생각한다. 사랑이 끝났다는 사실보다도, 그 사랑이 온전히 완성되지 못했다는 현실이 더 슬프게 느껴지는 건, 어쩌면 우리 모두가 그런 사랑을 한 번쯤 해봤기 때문일 것이다.

현실을 비추는 감정의 거울

영화는 끝났지만, 감정은 여전히 머물러 있다. 그들의 대사 하나하나, 눈빛, 표정이 마치 현실 속 우리의 모습을 비추는 듯하다. 현실에서도 마찬가지다. 사랑은 언제나 아름답지만, 그만큼 불완전하고, 종종 고통스럽다. 특히 사회가 강요하는 틀 안에서 살아야 하는 사람들에게는 그 사랑마저도 허락되지 않는다. 이 영화는 그런 불완전한 현실을 조용히 비춘다. 새드엔딩으로 끝났지만, 그것은 단지 한 커플의 이별이 아니다. 세상이 아직 준비되지 않았다는 증거다. 우리는 때로 '다름'이라는 이유만으로 사람들을 상처입히고, 멀어지게 만든다. 하지만 영화는 그 ‘다름’이 실제로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끊임없이 증명한다. 주인공 중 한 명이 마지막에 홀로 돌아서는 장면은 가슴이 아프도록 인상 깊다. 그것은 단지 이별을 상징하는 장면이 아니다. 세상이 외면한 사랑, 이해받지 못한 감정, 그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가야 하는 개인의 선택이다. 영화는 끝났지만, 우리는 여전히 그 뒷모습을 마음속에서 놓아주지 못한다. 영화가 끝난 후, 주인공에게 이야기 해주고 싶었다. "괜찮아, 너는 잘못하지 않았어. 너는 충분히 사랑했고, 그 감정은 진짜였어." 영화가 우리에게 이야기하려고 했던 것은 이것이 아닐까.

영화를 통해 다시 한번 깨닫는다. 세상 모든 사람이 행복할 순 없지만, 적어도 누구의 불행이 방치되거나 외면받아선 안 된다는 것. '가장 따뜻한 색, 블루'는 그 소수의 감정을 통해 오히려 더 많은 사람들의 감정을 건드린다. 우리 모두가 ‘다름’을 인정하며 살아가는 그 날이 오길 바란다. 현실에서도 그런 날이 찾아와서, 누군가의 사랑이 이유 없이 찢겨나가지 않길 바란다. 그 날이 오면, 영화 속 뒷모습들이 조금은 더 웃고 있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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