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는 고통을 말로 풀고, 누군가는 침묵으로 삼킨다. 그리고 어떤 사람들은 ‘글’로 견딘다. 영화 ‘나비잠’은 그런 이들을 위한 영화다. 한 사람의 예정된 죽음 앞에서, 또 다른 한 사람은 글쓰기로 자신을 구원하려 한다. 이 글은 ‘나비잠’을 처음 접했던 기억, 인상적인 장면, 유사한 한국-일본 합작 영화들과의 비교, 그리고 미쟝센으로 완성된 이 영화의 아름다움을 통해 이 작품의 가치를 재조명한다.
글쓰기로 고통을 견디는 사람, 찬해의 이야기
영화 '나비잠'을 보게 된 건 우연이었다. 어느 밤, 무작정 조용한 영화를 찾다가 발견한 작품. 그러나 단순한 감성 영화로 넘길 수 없었다. 특히나 찬해가 료코의 죽음을 예감한 뒤, 갑자기 미친 듯이 글을 써내려가는 장면은 마치 내 얘기를 들려주는 듯했다. 나 역시 삶이 너무 고통스러울 때면 글을 쓴다. 그건 고통을 줄이기 위함이 아니라, 그것을 천천히 바라보고, 견뎌내기 위한 방법이었다.
찬해는 일본에서 무명작가로 떠돌고 있는 인물이다. 그런 그가 우연히 료코를 만나, 언어도 다르고 배경도 다른 두 사람이 천천히 마음을 나누며 가까워진다. 하지만 료코에게는 예정된 죽음이 있고, 그 앞에서 찬해는 도망치듯, 그러나 동시에 붙잡듯 글을 써내려간다. 이 장면은 단순한 감정 폭발이 아닌, ‘글을 쓴다는 행위’가 얼마나 깊고도 절박한 자기구원이 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이 영화는 감정이 쌓였다가 터지는 방식이 아니라, 조용히 흘러간다. 대사가 적고, 공백이 많은 구성은 오히려 관객으로 하여금 스스로 감정을 채우게 만든다. 이 모든 것이, 찬해가 말로 하지 못하는 고통을 글로 견뎌내는 그 과정을 더욱 절절하게 만든다.
한국 배우와 일본 여배우의 만남이 만든 감정의 깊이
‘나비잠’은 배우 김재욱과 일본의 쿠로키 히토미가 주연을 맡은 영화다. 이처럼 한국 남자 배우와 일본 여배우가 함께 작업한 영화는 몇 가지 더 있다. 예를 들어, 배용준이 출연했던 <외출>이나, 이병헌이 등장한 <히어로> 등의 영화가 있다. 그러나 이 작품들과 ‘나비잠’은 분명한 결이 다르다.
대부분의 한일 합작 영화는 문화 차이나 로맨스 요소에 집중하지만, ‘나비잠’은 감정의 ‘결’ 자체에 집중한다. 김재욱의 절제된 연기, 쿠로키 히토미의 고요한 눈빛은, 말보다 강한 감정을 스크린에 남긴다. 특히 일본 특유의 조용한 연출 방식에 김재욱의 낮은 호흡이 어우러지며, 영화 전반에 따뜻한 긴장감을 더한다.
두 배우는 언어도 다르고, 연기 스타일도 다르지만, 이 영화에서 이질감보다는 섬세한 조화를 만들어냈다. 이는 단순한 ‘콜라보’의 의미를 넘어, 두 감성의 교차지점을 진정성 있게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로 꼽을 수 있다.
미쟝센으로 기억되는 영화, 나비잠의 아름다움
‘나비잠’은 상업적으로 흥행에 성공한 영화는 아니다. 극장 상영도 제한적이었고, 대중적인 화제성을 얻지는 못했다. 하지만 이 영화의 미쟝센은 그 어떤 대작보다도 섬세하고 아름답다.
특히 인상 깊었던 장면은, 료코가 찬해에게 조용히 책을 건네주는 장면이다. 어두운 조명 아래 잔잔히 흐르는 클래식 음악, 그리고 마치 회화처럼 프레이밍된 화면은 그 자체로 감정의 클라이맥스였다. 또 하나는, 눈 내리는 골목길에서 두 사람이 멀찍이 걸어가는 장면. 인물은 작게 잡히지만, 화면 전체를 감싸는 눈과 정적은 슬픔보다 더 깊은 감정을 전달한다.
감독은 인물의 감정보다는 ‘공기’를 찍으려 한 듯하다. 어떤 대사는 장면보다 덜 인상적이고, 어떤 장면은 대사 없이도 오래 기억에 남는다. 이런 영화는 보기 드물다. 흥행 실패가 이 영화의 실패를 의미하지 않는다. 오히려 감정의 결을 따라가는 관객들에게는 오랜 시간 곁에 남는 영화다.
‘나비잠’은 누구에게나 권할 수 있는 영화는 아니다. 하지만 삶이 복잡하고, 어떤 감정을 언어로 붙잡고 싶은 사람이라면 꼭 한 번은 봐야 할 영화다. 말보다 감정, 사건보다 공기, 그 섬세한 여운 속에서 당신은 ‘견딤의 언어’를 다시 배우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