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내 사랑’은 캐나다의 민속화가 모드 루이스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작품으로, 아픈 몸과 고립된 삶 속에서도 자신만의 색채로 세상을 채워나간 한 여성의 삶을 다룹니다. 영화는 따뜻하고 잔잔한 분위기로 모드의 삶을 아름답게 그려내지만, 동시에 사랑이라는 이름 아래 감춰진 폭력과 억압도 함께 담고 있어 쉽게 감상하기 어려운 복합적인 감정을 불러일으킵니다. 이 글에서는 영화 속 ‘사랑’이 정말 정당한지, 그리고 모드의 예술이 어떤 의미를 지녔는지 깊이 있게 살펴보고자 합니다.
모순된 사랑의 이름, ‘내 사랑’
‘내 사랑’이라는 제목은 관객에게 마치 로맨틱한 러브스토리를 기대하게 만듭니다. 그러나 영화가 그리는 관계는 결코 이상적이지 않습니다. 주인공 모드는 선천적인 관절염으로 인해 가족에게 외면당하고, 결국 광고를 보고 에버렛의 집에서 가사도우미로 일하게 됩니다. 그곳에서 시작된 관계는 결혼으로 이어지지만, 처음부터 권력 관계는 극명히 드러납니다. 에버렛은 무뚝뚝하고 감정 표현이 서툰 인물로 설정되어 있지만, 그의 무관심과 때로는 신체적 폭력은 관객에게 불편함을 줍니다. 그는 모드를 벽에 밀치거나 소리를 지르는 등 직접적인 폭력을 행사하기도 하며, 영화는 이를 갈등의 한 양상으로 무심하게 다루는 듯 보입니다. 영화 후반부로 가며 에버렛은 모드를 향한 감정과 후회를 드러내고, 함께 나이 들어가는 모습은 인간적인 울림을 줍니다. 하지만 이 감정의 변화가 모드가 겪은 고통을 덮을 만큼 충분한가에 대해선 의문이 남습니다.
모드 루이스, 예술로 존재를 증명하다
모드 루이스는 실존 인물로, 캐나다 노바스코샤에서 활동한 민속화가입니다. 그녀는 평생을 병약한 몸으로 살았고, 교육도 받지 못한 상태에서 독학으로 그림을 그렸습니다. 그녀의 작품은 선명한 색채, 평면적 구도, 반복적인 테마가 특징입니다. 풍경, 새, 고양이, 겨울의 설경 등 일상 속 장면을 단순하게 그렸지만, 그 안엔 삶에 대한 관찰과 애정이 녹아 있습니다. 영화에서도 이러한 예술적 측면은 부각되지만, 다소 미화된 느낌이 있습니다. 중요한 점은, 모드의 예술은 그녀가 고통을 견디는 수단이자, 세상과 연결되는 유일한 창구였다는 점입니다.
‘내 사랑’이라는 제목을 그대로 받아들이려면
이 영화를 정말 ‘내 사랑’이라는 제목으로 받아들인다면, 우리는 어떤 장면을 외면해야 할까요? 에버렛의 폭력적인 언행? 모드가 버림받고도 관계를 유지할 수밖에 없던 구조적 한계? 혹은 사랑이 결국 고통을 극복한다는 낭만적 메시지? 만약 영화가 에버렛의 폭력을 좀 더 직시했다면, 제목은 ‘모드의 집’이나 ‘작은 손의 큰 그림’처럼 그녀의 삶과 예술에 초점을 맞춘 이름이 되었을지도 모릅니다. ‘내 사랑’이라는 말은 애틋하고 감정적인 단어지만, 이 영화 안에서 너무 많은 의미를 뒤섞고 있습니다.
‘내 사랑’은 표면적으로는 사랑 이야기이지만, 깊게 들여다보면 여성의 고통, 예술을 통한 자아의 발현, 그리고 관계 안의 폭력이라는 주제를 담고 있습니다. 이 영화를 단순히 감동적인 러브스토리로만 보지 않고, 그 이면의 구조적 억압과 주체적 회복의 이야기를 들여다볼 때 비로소 영화가 지닌 진짜 가치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모드 루이스는 사랑을 통해 구원받은 것이 아니라, 예술을 통해 자신을 지켜낸 인물입니다. ‘내 사랑’이라는 제목은 그 과정에서의 질문이 되어야지, 답이 되어선 안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