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소공녀’는 단순한 독립영화가 아니다. 이 영화는 우리가 일상적으로 간과하고 있는 삶의 기본 요소, ‘의식주’에 대해 다시 질문을 던진다. 동화 속 ‘소공녀’가 상상 속 궁전에서 살아가는 귀족 소녀였다면, 영화 속 ‘소공녀’는 현실 속 가장 밑바닥에서 여행이라는 단어로 포장된 생존을 이어가는 청춘이다. 이 리뷰는 영화 ‘소공녀’의 제목이 지닌 다층적 의미를 해석하고, 영화 속 주인공 미소의 삶을 현실의 시선으로 바라보며, 마지막 장면 이후 그녀의 삶을 가상으로 그려본다.
동화 ‘소공녀’와 영화의 연결고리
프랜시스 호지슨 버넷의 소설 『소공녀』는 어린 시절 많은 이들의 감수성을 자극한 고전이다. 주인공 세라는 부유한 가정에서 자라다 아버지의 죽음으로 하루아침에 하녀 신세가 되지만, 긍정적인 마음가짐과 상상력으로 어려움을 이겨낸다. 이 소설은 계급과 상상력, 선한 마음의 힘에 대해 이야기한다. 영화 ‘소공녀’의 주인공 미소 역시 비슷한 전환점을 겪는다. 그녀는 평범하게 살던 도시의 청춘이었지만, 담배 한 갑과 위스키 한 병을 위해 집을 포기한다. 단순한 선택처럼 보이지만, 이 선택은 그녀를 이 시대의 ‘소공녀’로 만든다. 겉으로는 자유로운 유랑을 택한 듯하지만, 실상은 불안정한 삶의 한복판에 스스로를 밀어 넣은 것이다. 동화 속 ‘소공녀’가 상상으로 생존했다면, 영화 속 ‘소공녀’는 냉혹한 현실 속에서 스스로의 자유를 믿으며 살아간다. 두 인물 모두 세상의 논리에 반항하지만, 결과는 판이하게 다르다.
‘여행’이라는 단어에 가려진 현실의 무게
“집이 없는 것이 아니라, 여행하는 거야.” 이 문장은 얼핏 들으면 자유롭고 낭만적이지만, 그 이면에는 날카롭고 무서운 현실이 있다. 영화 속 미소는 더 이상 지불할 수 없는 서울의 월세 대신, 친구들의 집을 전전하며 살아간다. 하지만 그녀는 이 불안정한 생존을 ‘여행’이라 명명한다. 이 말은 마치 우리 사회의 빈곤 문제를 덮어버리는 화려한 수사처럼 느껴진다. 누구나 여행을 꿈꾼다. 그러나 여행은 돌아갈 집이 있을 때 의미가 있다. 미소의 여행은 돌아갈 집이 없기에, 곧 ‘유랑’이며 ‘부재’다. 인간의 생존에 필요한 가장 기본적인 요소인 ‘주거’조차 안정적으로 갖지 못한 채 살아가는 청춘의 현실은 너무나 아프고 차갑다. 이러한 현실은 관객에게 질문을 던진다. 미소는 정말 자유로운가? 아니면 자유라는 이름의 가면을 쓴 생존자인가? 낭만은 때때로 가장 치명적인 자기기만일 수 있다. 그리고 이 영화는 그 기만을 애써 드러내지 않고, 오히려 묵묵히 보여주며 우리 스스로 느끼게 만든다.
여주인공의 마지막과 그 이후, 그리고 우리의 상상
영화의 마지막 장면, 한강의 텐트 안에서 불빛 하나에 의지해 웅크린 미소의 모습은 한없이 작고 아슬아슬하다. 그녀의 2-3일 뒤를 상상하는 것조차 두렵게 만든다. 혹자는 이 장면을 ‘자유의 승리’라 해석할지 모르지만, 필자는 오히려 극한의 불안정성과 생존의 위태로움을 느꼈다. 미소는 영화 속에서도 몇 번의 위험한 상황에 노출된다. 예컨대 자신을 강제로 아내로 만들려는 노총각의 집에 머무르던 장면은, 여행이라는 이름이 얼마나 허약한 보호막인지 보여준다. 그렇다면 텐트 이후의 미소는 어떻게 되었을까? 그녀는 아마 하루, 이틀 정도는 평온한 시간을 보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봄밤의 찬기운, 주변의 낯선 시선, 안전하지 않은 공간에서의 피로감은 그녀의 몸과 마음을 서서히 잠식했을 것이다. 가상으로 그려보자면, 미소는 한강에서 며칠을 버티다 결국 노숙인을 위한 쉼터를 찾아가게 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또는, 오랜만에 연락한 친구 중 한 명이 그녀의 상황을 듣고 임시 거처를 마련해주었을지도 모른다. 또 다른 시나리오로는, 그녀가 여행을 끝내고 작은 지방 도시로 향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 모든 상상은 불안과 안도의 교차점에서 출발한다. 관객은 미소가 ‘무사하기를’ 바란다. 그것은 곧 우리가 그녀의 자유가 낭만이 아니라 생존이었음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녀는 더 이상 ‘소공녀’가 아니라, ‘도시 유목민’이며, 우리가 외면하고 있던 청춘의 진짜 얼굴이다.
영화 ‘소공녀’는 단지 한 명의 여주인공 이야기가 아니다. 이는 집세를 감당하지 못해 떠밀려 나가는 수많은 청춘들의 이야기이며, ‘여행’이라는 말로 현실을 덮고 살아가는 이 시대의 슬픈 은유다. ‘집이 없는 것이 아니라, 여행하는 거야’라는 말은 어쩌면 우리 모두가 곧 처할 수 있는 상황에 대한 경고일지도 모른다. 이 영화는 관객에게 낭만 너머의 진실을 마주하게 하며, 진짜 ‘소공녀’는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을 남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