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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아일랜드' 리뷰 (존재의 의미, 인간 도덕성, 기술과 자유)

by dailybigblog 2025. 4.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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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아일랜드' 속 한 장면

영화 ‘아일랜드’를 보고 머리가 복잡해졌다. 이 영화가 심심풀이로 보는 공상과학의 한페이지라기 보다는 존재, 자유, 인간의 존엄성과 같은 본질적인 질문을 나에게 던졌기 때문이다. 영화를 보고 난 뒤, 한참동안이나 내가 진짜로 '나'로 존재하고 있는 것인지, 혹은 거대한 시스템 속에서 길들여진 무력한 존재일 뿐인지— 고민해보지 않을 수 없었다. 영화 덕분에 루즈한 일상이 강렬한 상상력으로 가득찼다.

질문1 : “나는 정말 나로 존재하는가?”

영화 ‘아일랜드’를 처음 봤을 때, 낯선 두려움이 밀려왔다. 단순히 클론 인간에 대한 상상 속 이야기라고 넘기기엔, 그 설정이 너무 현실에 가까웠기 때문이다. 그리고 다시금, 내가 나로 존재하고 있는가에 대해서 골똘히 생각해 보게 된다. 영화를 보는 내내 매트릭스나 트루먼쇼 같은 영화들이 자연스레 떠올랐다. 마치 우리가 사는 세계가 누군가에 의해 조작된 시뮬레이션이라면? 내가 믿고 있던 모든 감정, 기억, 관계가 누군가의 목적을 위한 구성 요소라면? 이 질문은 나라는 존재의 근원적인 혼란을 불러 일으켰다. 얼마 전, 유튜브 알고리즘에 이끌려 한 영상을 우연히 보게 됐다. 영상 링크이 영상은 영화 ‘판타스틱 플래닛’을 요약해주는 콘텐츠였다. 영상 속 세계에서는 인간이 거대한 외계 생명체에 의해 지배당하며, 마치 애완동물처럼 길러지거나 사냥감이 되기도 한다. 영상은 너무 충격적이었다. 왜냐하면, 설정이 너무 낯설지 않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세계가 그런 방식으로 누군가에게 조종당하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상상이 머리를 스쳤다.‘아일랜드’ 속 주인공들 역시 자신들이 실제 인간이라고 믿고 살았다. 규칙적인 일상, 통제된 공간, 인공적인 자유. 그 모든 것이 ‘진짜 삶’이라고 믿었지만, 실상은 그들 위에 존재하는 진짜 인간들을 위해 만들어진 예비 부속품일 뿐이었다. 이 영화는 단순히 공상과학을 넘어서, 존재의 근본에 대해 묻는다. 우리는 과연 자유로운 존재인가, 아니면 누군가의 의도 속에서 살아가는 또 하나의 구성 요소일 뿐인가.

질문2 : “만약 내 삶이 타인의 목적이라면?”

영화 속 키워지는 인간들이 있다는 설정을 보며 내가 내 삶을 온전히 산다고 믿었던 그 감각이 흔들렸다. 그들이 처한 상황은 단순한 상상이 아니다. 현실의 과학 기술은 이미 생명체의 복제와 유전적 편집이 가능한 시대에 이미 접어들은지 오래고, 이 기술이 인간에게 적용된다면 영화의 설정은 더 이상 SF가 아닐지도 모른다. 영화 속 주인공들이 도망치며 외친 말들, 스스로 살아남기 위해 선택했던 행동들, 그리고 그들이 세상을 바라보며 느낀 충격은 마치 우리가 세상을 처음 인식했을 때의 그 복잡한 감정과 닮아 있다. 나도 생각했다. 만약 내가 그들처럼 타인의 목적을 위해 태어난 존재였다면, 나는 그 감옥 같은 삶을 견딜 수 있었을까? 사실, 우리는 모두 어떤 방식으로든 사회의 틀 속에서 길들여지고 있다. 교육, 문화, 시스템 속에서 내가 진짜 하고 싶은 것보다, ‘해야만 한다’고 생각되는 일을 우선하며 살고 있지 않은가. 주체적인 삶을 산다고 말하면서도, 어느 순간 우리는 누군가의 기대와 설계 속에 조용히 들어가 있다. 그래서 ‘아일랜드’는 단순한 영화가 아니다. 주인공들의 도망은 그저 생존을 위한 행동이 아니라,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려는 몸부림이다. 그 몸부림이 너무나 인간적이고 절실하게 다가왔다. 그들의 삶이, 그들의 외침이 곧 나의 것처럼 느껴졌다.

질문3 : “기술과 도덕성, 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영화를 다 본 뒤에도 생각은 멈추지 않았다. 특히 요즘 같이 AI가 일상에 깊숙이 들어온 시대에 사는 우리에게 ‘아일랜드’는 더욱 강하게 다가온다. 나만 해도 사업계획서 작성, 마케팅 전략 수립, 영어 회화 연습 등 다양한 분야에서 AI를 활용한다. ChatGPT를 활용하며 ‘이건 정말 편하다’고 생각하는 동시에, 가끔은 ‘이 편리함이 과연 옳은가’라는 생각도 하게 된다. 무서운 건, 이 기술이 인간의 윤리나 도덕적 판단 없이도 ‘무조건 가능한 방향’으로만 흘러가고 있다는 점이다. 영화 속에서도 인간은 ‘생명을 살린다’는 명목 하에 새로운 생명을 만들고, 그 생명을 다시 도구처럼 소모한다. 그러면서도 아무런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다. 기술의 발전은 막을 수 없다. 하지만 그것을 어떻게 사용하는지는 인간의 몫이다. 더 많은 돈, 더 큰 편리함, 더 높은 효율만을 추구하다 보면, 결국 우리가 만든 기술이 우리를 지배하게 될 것이다. 영화가 경고하는 건 단순히 복제인간이 아니라, 도덕성을 잃어가는 인간 자체다. 그리고 나는 여전히 묻는다. 이런 세상에서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은 누가 구분해 줄 수 있을까? 그 판단의 기준은 어디에 있어야 할까? 기술이 할 수 있는 일이 많아질수록, 오히려 인간의 역할은 더 중요한 것 같다. 우리가 그 경계를 지키지 않는다면, 결국 ‘아일랜드’는 미래가 아니라, 현실이 될지도 모른다.

‘아일랜드’는 단순한 공상과학 영화가 아니다. 그것은 우리가 살아가는 지금, 그리고 우리가 만들어갈 미래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어떤 목적으로 존재하는가. 나의 삶은 나의 것인가. 영화를 보고 나면, 우리는 다시 한번 스스로를 들여다보게 된다. 기술이 더 발달하고, 인간이 더 편리해질수록, 우리는 더 자주 묻게 될 것이다. ‘나는 정말 나로 존재하는가?’ 그리고 이 질문에 우리가 부끄럽지 않게 대답할 수 있으려면, 기술보다 앞서 도덕성과 존엄성에 대해 먼저 고민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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