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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미란다, 앤디, 우리)

by dailybigblog 2025. 4.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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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포토

영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는 화려한 패션 세계와 커리어 우먼의 성공기를 그린 작품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이 영화의 이면에는 ‘정상 노동’이 가능한 환경인가에 대한 깊은 질문이 숨어 있다. 사람들은 종종 미란다를 능력자, 앤디를 커리어우먼, 네이트를 속좁은 남자친구로 규정하지만, 이 프레임에는 노동 현실을 비정상으로 정당화하는 위험한 전제가 깔려 있다. 이 글은 기존 관점에서 벗어나 ‘노동자’와 그 주변인의 시선에서 다시 보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의 리뷰다.

미란다의 권위는 능력일까, 착취의 시스템일까?

많은 사람들이 미란다 프리슬리를 ‘최고의 커리어 우먼’ 혹은 ‘프로페셔널한 리더’로 기억한다. 그녀의 날카로운 판단력, 완벽을 추구하는 디테일, 그리고 패션계에서의 영향력은 분명 영화 속에서 부각되는 요소다. 그러나 이 모든 요소는 ‘비정상적인 노동 구조’를 정당화하기 위한 장치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미란다는 앤디에게 극단적인 업무 강도를 요구한다. 새벽, 주말, 휴일, 심지어 파리 출장 중에도 앤디는 미란다의 부름에 즉시 응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앤디의 사생활은 철저히 파괴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 속 인물들과 많은 관객은 이를 “성공을 위한 과정”이라고 쉽게 치부한다. 이처럼 비정상적인 노동을 정상으로 인식하게 만드는 구조는 단순히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가 익숙하게 받아들이는 자본주의 시스템의 본질적인 속성이다. 이 영화는 미란다의 인간적인 고통과 희생도 함께 그려냄으로써, 그녀에 대한 비판을 무디게 만든다. 그러나 중요한 건, 그 개인의 사연이 비정상적 시스템을 합리화할 수 있는지 여부다. 공감은 하되, 비판은 유지되어야 한다. 미란다가 능력 있는 사람이라는 사실이, 그녀의 조직 운영 방식이 윤리적이라는 증거가 되지는 않는다.

앤디의 변화는 성장일까, 동화의 과정일까?

영화 초반의 앤디는 평범하고 순진한 기자 지망생이다. 그녀는 패션에 관심이 없고, 이 산업을 일종의 가벼운 것으로 여기지만, 점차 변해간다. 패션을 이해하고, 미란다의 업무 방식을 터득하며, 조직에서 인정받게 된다. 표면적으로는 앤디의 성장처럼 보이지만, 사실상 이는 ‘동화’의 과정이다. 조직의 논리에 적응하고, 그에 따라 자신의 삶을 재편성하는 일련의 변화다. 앤디는 결국 네이트의 생일도 잊고, 친구들과의 약속도 깨며, 자신의 삶보다 미란다의 요구를 우선시하게 된다. 이 변화는 자주 “성숙”이나 “커리어의 희생”으로 포장되지만, 본질은 ‘자기 파괴’에 가깝다. 관객은 어느새 그런 앤디를 이해하고 응원하게 되며, 동시에 네이트나 친구들의 비판은 “성장을 이해하지 못하는 주변인” 정도로 전락해버린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보자. 진짜 성장이라면, 자기 삶과 직업 사이의 균형을 유지하면서도 스스로의 신념을 지켜내는 것이 아닐까? 조직에 적응하기 위해 모든 것을 포기해야만 하는 구조라면, 그 조직 자체가 잘못된 건 아닐까? 앤디의 변화는 결국 미란다처럼 되지 않기 위해 회사를 떠나는 데서 마무리되지만, 이미 그녀는 동화되고 말았다. 문제는 이 ‘동화’를 성공으로 받아들이는 사회의 시선이다.

우리는 왜 CEO의 편을 들까?

가장 흥미로운 지점은, 많은 사람들이 미란다의 말과 행동을 ‘합리적’이고 ‘정당한 것’으로 받아들이며, 오히려 앤디의 연인이었던 네이트에게 비판을 가한다는 점이다. “왜 생일 하나 못 이해하냐”, “성장하는 사람 옆에서 조용히 응원해야지”라는 식의 반응은, 실상 우리의 사회적 프레임이 노동자보다는 ‘사장님’의 시선에 훨씬 더 익숙하다는 걸 보여준다. 그러나 현실을 되짚어 보면, 우리는 대부분 미란다가 아니라 네이트에 가깝다. 우리의 가족, 연인, 친구는 모두 각자의 삶 속에서 누군가의 앤디이며, 또 누군가의 네이트다. 영화는 현실에서 일어나는 관계 갈등의 복합성과 노동 착취의 구조를 정교하게 감춘다. 관객은 어느새 '현실적 성공'이라는 이름 아래 노동자의 사생활 포기와 심리적 고통을 정당화한다. 왜 우리는 CEO의 편을 들까? 그 자리에 설 수 있을 거라는 환상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은 평생 노동자로 살아간다. 그리고 그 현실 속에서 진짜로 중요한 것은 ‘성공’이 아니라 ‘존엄’이다. 네이트는 앤디의 성공을 질투한 것이 아니라, 함께 나눈 삶의 약속과 시간을 잃어가는 것에 대한 슬픔을 표현한 것이다. 그것이 이기적으로 느껴졌다면, 우리는 이미 착취를 내면화한 것일지도 모른다.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는 화려하고 세련된 겉모습 뒤에 현대 노동의 민낯을 숨기고 있다. 그리고 우리는 그 민낯을 볼 줄 알아야 한다. 미란다의 카리스마에 압도되기보다는, 앤디의 변화에 박수를 보내기보다는, 그 속에서 침묵한 노동의 대가와 관계의 파괴에 주목해야 한다. 진짜 문제는 성공을 위한 희생이 아니라, 희생을 강요하는 시스템이다. 이 영화를 다시 볼 때, 이제는 다른 눈으로 바라보길 바란다. 당신은 어느 쪽에 설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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