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한 타인’은 현대인의 작은 우주인 스마트폰을 뒤지며, 인간이라는 동물의 이면과 관계의 민낯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하지만 단순히 비밀을 폭로하는 것이 전부인 것이 아니라, 인간이 얼마나 다양한 얼굴을 가지고 살아가는지에 대한 묵직한 질문도 함께 던지고 있다.
비밀 : 모든 것을 알 필요는 없다는 당연한 사실
영화를 처음 보고 나서 좀 이상했다. 이 영화가 하려는 말이 뭔지 어렴풋이 알긴 알겠는데, 그걸 드러내는 방식이 어딘가 모르게 불편했기 때문이다. 핸드폰을 열어서 문자, 전화, 사진, 이메일을 공유하는 게임을 시작하면서 벌어지는 일련의 사건들—그 안에는 불륜, 커밍아웃, 비밀계좌, 서로의 뒤를 알지 못하는 관계들이 등장한다. 영화는 이런 숨겨진 이야기들을 드러내면서 “봐, 너희는 서로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잖아?”라고 말하는 듯한 연출을 한다. 근데 그게 공개처형 당하듯이 비판받을 일인건가 싶었다. 물론 개인의 도덕적 일탈에 대해서는 의견이 다를 수 있지만, 누군가를 제대로 알지 못하고 살아가는 것 자체가 조롱받는 것 같아서 좀 납득하기 어려웠다. 서로가 서로를 모르며 살아가는 게 왜 꼭 잘못된 것이어야 하지? 모든 것을 다 알고 있어야만 진짜 관계인가? 모든 진실이 밝혀져야만 도덕적인 건가? 누군가의 비밀이나 약점을 모른다는 이유만으로 그 관계가 거짓이었다고 단정 짓는 건, 오히려 너무 성급하고 일방적인 해석 아닐까 싶었다. 나도 솔직히 영화를 보는 내내 ‘그래, 우리가 서로에 대해 아는 게 생각보다 적지’라는 생각은 들었지만, 그게 꼭 비판 받아야 할 일이라고는 생각 안 들었다. 서로를 완벽히 알 수 없는 게 오히려 인간적이고 자연스러운 거 아닐까? 오히려 그 한계를 인정하면서 관계를 만들어 가는 게 더 현실적인 방식이라고 느껴졌다. 그래서 영화가 그 ‘모르면서도 잘 아는 척 살아가는 관계들’을 마치 폭로의 대상으로 삼는 듯한 연출은 조금 불편하게 다가왔다.
페르소나 : 우리는 하루에도 몇 번씩 다른 나를 연기한다
이런 면에서 사실 영화가 정말 하고 싶었던 말은 따로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우리 모두는 매일, 자신도 모르게 연기를 하며 살아간다. 그게 꼭 나쁜 건 아니고, 어쩌면 사회 속에서 살아가기 위한 당연한 생존 방식인지도 모른다. 누구나 여러 개의 페르소나를 가지고 있고, 상황에 따라 그 얼굴을 바꾸는 게 자연스러운 거다. 리뷰를 보다 보면 영화 속 주인공들을 마치 죄인처럼 몰아가는 반응들이 많았는데, 그런 댓글을 보며 문득 물어보고 싶었다. ‘당신은 하루 24시간 중 온전히 당신 자신으로만 사는 시간이 얼마나 돼요?’ 나만 해도 그렇다. 엄마로서, 아내로서, 사장이자 동시에 직원으로서, 대한민국에서 살아가는 중년 여성으로서, 소비자이자 생산자로서—정말 수없이 많은 역할을 오가며 하루를 살아간다. 그러니까 솔직히 말해 ‘진짜 나’라는 게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어떤 얼굴이 ‘가장 나다운 얼굴’인지도 헷갈릴 때가 있다. 그런 나를 내가 다 이해하지도 못하는데, 다른 사람의 얼굴과 속내를 다 안다는 게 가능한 일일까? 그래서 영화 속 인물들이 자신을 숨긴다고 비난받는 게 조금 불공평하게 느껴졌다. 누구나 다 그렇게 살아가고 있는데, 그걸 들켰다고 해서 더 부도덕한 건 아니니까. 어쩌면 영화는 우리 모두가 그렇게 서로에게, 그리고 자신에게도 ‘완벽한 타인’일 수 있다는 걸 보여주려 했던 건 아닐까.
적은 제작비, 큰 울림: 가성비 갑 영화
영화에 호기심이 생겨 찾아 보니 이 영화는 우리나라뿐 아니라 이탈리아 원작을 시작으로 스페인, 프랑스, 일본, 중국 등 여러 나라에서 리메이크가 되었다고 한다. 이유가 뭘까 생각해보면, 이 영화는 정말 제작비가 적게 들었을 것 같다. 등장인물은 몇 명 되지 않고, 영화의 대부분은 한 자리에 앉아 대화만 한다. 공간도 단 하나, 친구네 집 거실에서만 거의 모든 사건이 벌어진다. 그래서 오히려 배우들의 연기력이 더 중요하게 느껴졌다. 말 한 마디, 눈빛 하나에 캐릭터의 감정선이 다 드러나는 그런 영화. 그렇게 큰 세트도, 화려한 액션도 없이, 이 영화는 현실보다 더 현실 같은 이야기로 사람들의 마음을 건드렸다. 작은 예산으로 이 정도 파급력을 가질 수 있다는 점에서 정말 ‘가성비 갑’ 영화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뿐만 아니라, 영화가 주는 메시지 자체가 워낙 묵직하다.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 ‘너 진짜 너로 살고 있어?’라는 질문을 던지고, ‘관계’라는 게 얼마나 불완전하고 복잡한지를 직면하게 만든다. 관객이 편하게 앉아서 보기에는 불편한 영화일 수 있지만, 오히려 그래서 더 오래 기억에 남는 작품이었다. 작은 돈으로 큰 울림을 남긴, 요즘 시대에 보기 드문 영화였다.